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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 희철 선생님께서는 80년대에 독일에 오셨다. 90년대 초에는 브레멘 한국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하셨었 고  2000년 초에 반 고호 전시회가 브레멘 미술관에서 열렸을 때 반고호의 작품 40점을 그려 전시하셨다 고 한다. 전시회에 관한 브레멘 지역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영상은 아래 주소 비메오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방송국의 공개허락을 아직 받지 못해 비밀번호(bremen)를 설정해 놨다. 


https://vimeo.com/261086366


그 전시회가 열렸을 때 브레멘 한국학교 학생들 모두 관람했다 고 한다. 


영상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부탁을 하셨고 방송국의 공개허락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비공개가 될 것이다. 비메오에 같이 있는 영상에 관한 설명도 선생님께서 작성해주신 것이다. 


나는 한국학교 교장을 2017년도 1월부터 하고 있는 중인데 선생님의 관련 서류가 다행히도 남아있어 알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설립자인 이 광택 선생님 덕에 알게되었다. 사실 이 광택 선생님이 소개를 해주신 것은 아니고 내가 무작정 전화를 걸어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작곡가이시면서 화가셨는데 선생님의 음악을 브레멘 한국학교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전화를 드렸었다. 돌아가시기 반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전  건강한 선생님을 몰랐던 터라 선생님이 그렇게 아프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만난 선생님은 육체적으로 많이 쇠약하셨지만 정신은 여느 젊은사람 못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디어가 넘쳤고 뭔가 하고 싶어하셨고 요구도 하셨다. 나에게 피아노를 배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해결방법도 생각해 주셨다. 상황이 안된다는 나의 말을 핑계라고 생각하셨고 움직이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채찍질과 동시에 격려도 해주셨다. 


한국학교 교사를 구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더니 지인들께 물어봐주셨고 할 수 없다는 지인들에 말에 실망을 하시며 나에게 전달하셨다. 나는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스스로 해결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넘치는 선생님의 에너지 덕에 그래서  선생님이 그렇게 아프신줄 몰랐다... 


그런 선생님께 나는 한국학교 교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고 올해 초에 완성하여 보내주셨다. 악보를 읽지못해 동동거리는 나를 위해 선생님 스스로가 음원을 연주시켜 들려주셨다. 그것에 보답하고 싶었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같아 주저했는데 그 망설임때문에 늦어버렸다. 늦게나마 감사드리고 싶었다. 


지난 주 있었던 선생님의 장례식에는 선생님의 오랜 친구들이 함께 해주셨고 한국학교 교장으로 또는 친구로서 그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감사했다. 두번째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선생님의 학생을 알지못했다면 그것도 불가능했을것 같다. 


선생님의 오랜 친구분들은 추도 음악회를 말씀하셨다. 언제가 될지, 할수있게나 될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설사 그것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은 친구분들 사이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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